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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간효 미노부입산

상락아정 2019. 12. 5.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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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부에서의 생활

1274326일 가마쿠라로 돌아오신 대성인님께서는 막부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으시고 48일 헤이노 사에몬노죠를 비롯한 막부

요인들과 대면하였습니다.

 다쓰노구치 법난 때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듯이 위세 등등하던

헤이노 사에몬노죠도 전과는 달리 태도를 누그러뜨려 대성인님을

맞아들여 이전경으로 성불득도할 수 있는지, 몽고 내습의 시기는

언제일지 등에 관해 질문을 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대성인님께서는 이전경을 믿는 모든 종파는 성불할 수

없다는 것, 지금까지와 같이 진언종 승려들에게 기도와 조복(調伏)

하도록 한다면 일본은 무너질 것이고 천()의 노여움을 적잖이

사게 될 것, 몽고의 내습은 반드시 금년 안에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시고, 하루빨리 사법(邪法)에 집착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정법(正法)에 귀의하도록 간효하셨습니다.

 막부는 대성인님의 이와 같은 간언(諫言) 가운데 예언하신 말씀이

적중할 것만을 두려워하여 대성인님께 도고 저택 옛터에

당사(堂舍)를 지어 드릴테니 다른 종파 승려들처럼 국가의 안녕을

기도해 달라고 했으나, 대성인님께서는 이러한 막부의

제의를 일축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대성인께서 세간적인 명성이나 권력의 비호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인 사교(邪敎)

퇴치하고 정법을 신수하게 하여 평화로운 국토를 건설하는 것을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미노부산(身延山) 입산

 

 대성인님께서는 세 번에 걸친 간효를 하셨으나 막부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국가에 세 번 간()해도 받아들이지

아니할 때는 산림(山林)에 들어간다는 고사에 따라 12745,

53세 때 미노부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미노부는 가이지방(지금의 야마나시현 미나미코마군)에 속하며

닛코상인의 교화를 받은 하기리 사네나가가 지두(地頭)를 지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한적한

미노부에서 사은보사(四恩報謝)의 독경 창제를 하시면서 미래

만대에 걸친 영법구주(令法久住광선유포(廣宣流布)

대계(大計)를 꾀하셨는데, 특히 법화취요초에서 상행보살의

출현에 의한 본문의 본존· 계단· 제목이라는 삼대비법(三大秘法)

의 명칭을 처음으로 설해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법문을 설해

밝힌 어서 집필과 제자 육성에 전념하셨습니다.

 

미노부에서의 대성인님의 생활은 식료품은 부족하였고 게다가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와 싸우는 나날이었습니다. 각지에서 신도가

공양물을 올리기는 하였지만 많은 제자를 육성하기에는 넉넉하지

못하여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 무렵의 생활에 관해 대성인님께서는

소무(蘇武)와 같이 눈을 먹으며 목숨을 잇고 이능(李陵)과 같이

도롱이를 입고 나날을 지내느니라. 산림에 들어가 나무 열매가

없을 때는 공복(空腹)으로 이삼일을 지내고 사슴 가죽이 찢어지면

알몸으로 삼사 개월을 지냈느니라(단의초 어서 904)고 적고 계시며,

 이 미노부산에는 돌은 많지만 떡이 없고, 이끼는 많으나 깔

것이 없느니라(연삼매어서 어서 1592)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혹독한 가운데서도 대성인님께서는 주야로 법화경을

독송하시고 강의하셨는데, 그 강의를 청문하는 제자와 신도들이

차츰 늘어 갔습니다.

 

몽고 내습(來襲)

 미노부에 입산하신지 5개월 되는 1274(문영 11) 10월 드디어

대성인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25천 여명의 몽고 대군이 일본에 내습

이 동란을 일본 역사에서는 '분네이(文永)'이라 함하였습니다.

 몽고군은 105일 쓰시마에 상륙, 14일 이키에 쳐들어와 무방비

상태의 섬 사람들을 살육하고 20일에는 여세를 몰아 하카타만 서부에

 상륙하여 다자이후(太宰府)까지 진공해 왔습니다. 이 전란으로

쓰시마 섬의 수호(守護)당시 일본 각 지방의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던

관직, 또 그 관직에 있던 사람와 진서봉행(鎭西奉行)

당시 일본 큐슈 지방의 치안 등을 담당하던 기관, 또는 그 기관장

비롯한 많은 무장과 병사들이 전사했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 이와 같은 비극의 원인을

이는 오로지 불법(佛法)의 사견(邪見)에 의한 것이니라

(소야입도전어서 어서 747)고 단언하시며, 하루빨리 나라 안의

방법(謗法)을 그만두고 정법에 귀의해야만 한다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 뒤 1281(홍안 4) 5월에 몽고가

분네이의 역을 상회하는 대군으로 다시 내습이 동란을 일본

역사에서는 '고안(弘安)의 역()'이라 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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