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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집생의(動執生疑)

상락아정 2019. 12. 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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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집생의(動執生疑)                                          

 

평소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높은 탐구심으로 새로운 것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항상 집착하는 마음을 자극하여 놀라움이나

의문을 일으켜 그 의문을 밝히려 노력하고 탐구한다면

인생은 그 깊이를 더할 것입니다.


불법(佛法)에서 말하는 동집생의란 설법의 한 방식으로서 낮은 법에

집착한 마음을 동요시켜 의문을 생기게 한 다음, 높은 차원의

법을 설하여 터득케 하는 방법입니다.


이 동집생의는 부처가 설법하는 과정에서, 보다 진실한 법을 설해야 하는

시점에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중에서도 용출품의 미륵보살이 일으킨

동집생의는 지용의 보살의 등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용출품의 전반부에서 적화의 여러 보살이 사바세계 홍교를 맹세하지만

석존이 허락하지 않지요. 그 순간 대지가 갈라지며 상행보살을 선두로

한 아름다운 무수한 보살이 땅에서 솟아오릅니다. 바로 지용의

보살의 위풍당당한 출현입니다.

 

이를 본 미륵보살이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여 부처에게 설명을 청하자,

석존은 “나는 구원 이래 이들 중생을 교화해 왔다”라고 답합니다.


이에 더욱 의혹이 깊어진 미륵보살이 “세존은 성도(成道)한 이래

4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많은 제자를 교화했습니까”라고 묻는데,

이것이 바로 미륵보살의 동집생의인 것입니다. 이 물음을 통해

부처가 구원의 옛날에 이미 성불했다는 구원실성을 밝히게 됩니다.


의문이 있다는 것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부처는 제자에게 진실된 법을

이해시키려고 동집생의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집과 아견에 물들어 집착심이 강한 현대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과 생각을 흔들고 움직여 불법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포교’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묘법을 신수하여 행복경애를 열어갈 수 있도록 포교에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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