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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매도리(櫻梅桃李)

상락아정 2019. 12. 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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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매도리(櫻梅桃李)

꽃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벚꽃은 벚꽃, 매화는 매화, 복숭아는 복숭아,

자두는 자두라고 저마다 특질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무작삼신(無作三身)의 부처라고 열어 보아야 한다”

(어서 784쪽, 통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도 앵매도리(櫻梅桃李)입니다.

얼굴도 가지각색. 성격도 가지각색.

모두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인간 세상은 재미있습니다.

만약 이것도 저것도 전부 같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또 두려운 세상일까.

모두 자기만이 지니고 있는 사명이 있습니다. 무대가 있습니다.

인생은 드라마입니다. 자기답게, 명배우처럼 생기발랄하게 꿋꿋이 살고자 합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쾌활하게! 그렇게 하면 주위도 밝은 얼굴이 됩니다.

그리고 총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입으로 묘법을 가르치고 남을 부처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입으로 남을 지옥에 떨어뜨리는 일도 있습니다.

격려가 바로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예술입니다.                              

 

 

전부 벚꽃이 되거나 혹은 매화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될 수도 없습니다.

벚꽃은 벚꽃, 매화는 매화, 복숭아꽃은 복숭아꽃, 자두꽃은 자두꽃으로서

각각 개성 풍부하게 빛나면 됩니다. 그것이 가장 올바른 것입니다.

원래 ‘앵매도리’란 하나의 비유이지만, 그것이 인간이든 사회이든

초목국토(草木國土)이든 다양성의 중시라는 점에서 원리는 같습니다.

‘자체현조(自體顯照)’라고 하듯이, 자기 본연의 개성을 내부에서 최고로 꽃피웁니다.

게다가 그 개성은 쓸데없이 다른 개성과 부딪친다거나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차이점을 소중히 하면서, 화원(花園)과 같은 조화를 이룹니다.

거기에 불교의 본질이 있습니다. (중략)

이렇게 인간이나 자연의 만상(萬象)은 연(緣)에 의해 생기는

상호관계성 속에서 서로 특질을 존중하고 살리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것이 불교의 연기관(緣起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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